HOME > 커뮤니티 > 여순광이야기

관광지포토이벤트


 

여수 | 서너 걸음마다 이순신,살아있는 전설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수여행센터1 작성일16-08-16 13:38 조회3,197회 댓글0건

본문

 

 

 

  

 

6. 살아있는 전설들

 

벌통수박 전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병사들에게 일본으로 귀환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고니시 유키나가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왜교성을 쌓고 퇴로를 물색하고 있었다. 임진, 정유 양란의 마지막 전투인 왜교성 전투에는 수많은 의병들이 모여들었다. 왜군들은 퇴로를 차단 당하고 있어 꼼짝 없이 지원병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의병들은 잘 익은 수박 수십 통을 준비했다. 그들은 속살을 모두 긁어내고 그 속에다 벌을 가득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 벌통을 물때와 바람을 이용해 한밤중에 왜교성으로 띄어 보냈다. 날이 밝자 왜군들이 바닷가를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수박 덩어리가 해안가에 떠밀려와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굶주린 왜군들은 모두 나와 수박을 건져 깨뜨렸다.

순간 벌떼가 나타나 왜군들을 무차별 쏘아 댔다. 벌에 쏘인 왜군들은 이리 저리 날뛰고 비명을 질러 왜교성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며칠 후, 의병들은 이번에는 수박이 아닌 박을 모아 속을 긁어내고 벌이 아닌 폭약을 박속에 넣어 왜교성으로 보냈다. 수박 속 벌떼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왜군들은 장작불을 피워 놓고 박을 모두 그 불 속에 던져 넣었다. 순간 박속에 들어있던 폭약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바람에 근처 왜군들이 몰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도독골 전설

 

나진리 소장마을에서 동남으로 1.5km 떨어진 해안에 일명 도독골이라는 곳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는 조선의 요청을 받아 원군을 파병하였으며, 명나라 원군의 도독 진린은 현재의 여수시 화양면 나진리 소장마을 인근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왜군들이 대량의 병선을 이끌고 가막만 일대를 침범해 왔다. 진린 도독은 적선이 너무 많고 또 날이 어두워서 나가 싸우기보다 싸우지 않고 이들을 퇴치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진린은 근처에 있는 쓸모없는 목선 수십 척을 모아 그 위에 왕겨를 가득 쌓았다. 그리고 굵은 대나무 수백 개를 왕겨와 함께 올려놓았다. 그런 후, 나이 깜깜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왕겨에 불을 붙여 왜선들이 있는 곳으로 띄어 보냈다. 조류를 타고 가막만으로 흘러가던 목선은 대나무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대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왜선들에게 달려 들었다. 날이 어두워 그것을 총소리로 착각한 왜군은 지레 겁을 먹어 싸우지도 앟고 배를 돌려 무술목 쪽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그곳엔 이순신의 수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전멸당하고 말았다. 후에 진린 도독이 머물렀다 하여 이곳을 도독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술목 전투

 

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1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전라남도 해양수산과학관을 만나게 된다. 이 해양수산과학관이 위치한 곳을 무술목 혹은 무실목이라 한다. 이곳 사람들은 북쪽의 소미산과 나쪽의 대미산 사이 폭이 좁은 지형을 가리켜 목이라 불렀다. 지금은 양쪽에 제방을 쌓아 밀물이 되어도 폭이 좁지 않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썰물 때면 바다 밑 암반이 드러나 양쪽 지역의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다녔고 밀물이 되면 다시 바다 속에 잠겼다고 한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패하고 돌아 가는 왜적을 이곳으로 유인하여 섬멸할 계책을 세웠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무술목의 지형적 특징을 이용한 속임수였다.

 이순신은 무술목 부근의 지도를 남해안과 가막만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려서 이를 왜군에게 흘렸다. 패전하고 돌아가는 왜군의 손엔 바로 이 지도가 들려 있었다. 이순신의 계책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지도만 믿고 도망치던 왜군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가 되고 말았다.

 이때 대미산과 소미산 기슭에 매복시켜 놓았던 수군 300여 명이 기습작전을 펼쳐 왜선 60여 척과 왜군 300여 명을 섬멸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무서운 목이라 하여 무술목이라 하였고, 앞바다는 왜병들의 피로 물들었다 하여 피내라 불렀다.

 소미산 아래 무술목 입구에는 1958년에 이은상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1457573c8b3090b7bdadf69b7b34e071_1699689
선생이 비문을 지어 세운 이충무공 유적기념비가 있다.

5c69f28974f877a73fc58aaf14090e74_1471323


 

출처 : 여수시 숨겨진 이야기속의 미항 여수 나들이​ 

 

[이 게시물은 여수여행센터1님에 의해 2018-03-09 11:19:08 포토노하우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