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여순광이야기

관광지포토이벤트


 

여수 | 이순신과 거북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수여행센터1 작성일16-08-16 10:27 조회3,344회 댓글0건

본문

3. 이순신과 거북선

1144a7799c14d41d1d980b76db817716_1471332
 

사도에서 거북을 만나다

 

음력 2월 영등 제일 날, 이순신은 사도를 순찰했다. 사도는 여수시 화정면에 있는 섬이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바위로 된 시루섬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많았다. 멍석바위는 정말 멍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넓고 편편했다. 이순신은 그곳에 앉았다. 장군의 머릿속은 왜군을 이길 묘책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정답 없는 문제를 손에 든 난감한 학생의 모습이었으며, 출구 없는 막장에 홀로 남은 답답한 광부의 모습이었다.

 짧조름한 바람이 장군의 뺨을 때리고 스쳤다. 바다는 심하게 안개에 덮여 있었다. 순간 나선형 안개 띠가 물을 위로 감아올렸다. 신비한 광경이다! 그러자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건녀편 추도섬에 내리꽂혔다. 기이하게도 물이 불쑥 일어서더니 급기야 양쪽으로 갈라섰다.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로 외줄기 길이 나왔다.

 

f28e631c4d28ee95847f40758ec6ac1b_1471309 

거북을 닮은 괴물이 바다 사이로 난 길 가운데로 들어왔다. 괴물의 입은 연신 불을 뿜어냈으며 그 위용은 힘차고 거침없었다. 뿜어낸 연기 때문에 눈앞이 더욱 자욱해졌지만 괴물의 행진은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하나가 아니었다. 맨 처음 들어선 괴물 거북 뒤로도 여러마리가 줄지어 행렬을 하고 있었다. 거북이라니. 자신의 동공을 쏘아 보는 괴물의 눈빛에 이순신은 그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으아악~"

이순신의 비명소리에 부하들이 순식간 몰려들었다.

"장군!! 장군!"

"아아악!바다, 바다가 갈라진다, 아아악~"

"장군, 장군, 고정하십시오. 장군, 정신이 드시옵니까? 2월 영등사리 때는 사도 주변의 바다가 언제나 저렇게 갈라진답니다. 고정하십시오."

정신이 들엇다. 사도의 바닷길은 여전히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거북은 사라지고 없었다. 찬바람이 살짝 스치자 이순신은 머리카락 끝까지 으스스 전율을 느꼈다.

"괴물거북은 어디에 있느냐? 아니, 그 많던 거북은 다 어디로들 갔느냐?"

"장군! 장군께서 잠시 꿈을 꾸신 모양입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

f28e631c4d28ee95847f40758ec6ac1b_1471310 

 장군이 깜빡 잠이 들었던 바위가 지금의 장군바위다. 이후 장군 바위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거북바위가 생겼다.

 이순신의 배가 좌수영 선소에 다다를 때쯤 어릴 적 기억이 피안의 저쪽에서 밀려왔다. 아마 열두서너 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던 이순신이 친구들과 함께 진을 치고 진법을 연습 하고 잇었다. 그때 지나가던 송구봉이 그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밤에 혼자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이순신은 별 생각 없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송구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아홉마리의 거북 그림. 귀선도.

 이순신은 문득 그 귀선도가 선명하게 머리에 그려졌다. 그때 송구봉의 집에서 보았던 귀선도에는 여덟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송구봉은 그 구멍을 뱀이 소리를 듣기 위한 눈, 사청목이라 했다. 어린 이순신은 바깥의 소리를 듣기 위해 구멍이 필요 하다는 말이 신기하게 들렸지만 그것을 머리에 넣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런 송구봉의 귀선도가 사도의 거북과 맞물려 이순신의 정신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거북선의 밑그림을 그리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야!'

뱃머리의 거북 머리 위쪽에는 2개의 대포 구멍을 뚫고, 거북 머리 아래에 2개의 문을 낸다. 문 옆에는 각각 1개씩의 대포 구멍을 내고, 거북 잔등 판 좌우에도 각각 12개의 대포 구멍을 뚫는다.

 사도에서 보앗던 괴물처럼 배 안에서 유황과 염초를 태워 입을 벌려서 마치 안개처럼 연기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배의 좌우에 노를 각각 8개식 16개를 둔다. 또한 좌우에 각각 14개의 방패와 그 방패에 각각 22개의 대포구멍을 뚫고 또 각각 12개의 문을 낸다.

사도에서 보았던 불을 뿜던 기묘한 거북 형상과 이순신의 영감이 더해져 생각 화반응이 몇날 며칠 동안 계속 일었다. 그동안 이순신은 손에 잡힐듯한 생각이 다가가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고, 운무가 길을 감추고 있던것처럼 막연한 생각들이 금방 만져질 듯하다가 다시 사라지는 그런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었다.

 잠도 끼니도 잊고 거북이라는 하나의 화두만 붙들고 몰입한지 한 달.

드디어 머릿속에서 가물거리던 거북선이 하얀 도면 위에 한 땀 한 땀 그려지게 되었다.

물론 정확한 설계도면은 아니었다. 큰 밑그림이었고 설계도면을 그릴 초안이었다. 거북선의 모형이 이미 고려시대도 있었다고는 하나, 그가 임진왜란을 치를 전함의 모형을 거북에서 딴 것은 하늘의 계시였고 바다의 신력이었다.

 

바다를 제대로 모른 채 우국충정 하나만으로 전라좌수사의 임무를 띠고 부임해온 이순신.  그는 여수라는 지형에서 내뿜어지는 신성한 거북 기운을 감지하여 불패의 신화를 이룬 거북선을 바로 이곳 여수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여수가 아니었으면 과연 이순신이 거북선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거북선이 아니었으면 과연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은 여수사람들에겐 질문이 아니라 크나큰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철의 참전

 

여수시 봉산동의 삼천 평 남짓한 사철소에는 수십여 곳에 풀무간이 있었다. 풀무간에서는 날마다 뜨거운 쇳물이 끓었다. 콸~콸~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 영역을 침입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시뻘건 입을 쳐든 용광로의 분노가 풀무간을 뜨겁게 달구었다. 한정된 영역에서만 끓어오르느라 미처 분을 풀지 못한 쇳물이 땀에 절여진 대장장이 이들을 향해 크게 용트림을 했다.

 쇠망치 소리가 거세질수록 바깥사정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쇠망치 소리가 잦아질수록 승전고가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했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전령들의 두루마리 소식들은 환희를 한숨으로, 한숨을 환희로 순간 순간 바꾸어 놓았다. 아무도 경박한 입놀림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섣부른 승리나 항복 등을 점치지 않았다. 세치 혀가 얼마나 하늘의 기운을 좌우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조심을 시켰기 때문이다.

 "본디 병기란 말이여, 나라의 승운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겄서? 입방정을 떨면 될 일도 어긋나는 벱이여. 그렁께 모다들 입을 허툴게 놀려서는 아니되는 것이여, 알것는가."

 "어르신, 시방이 어느 때라고 감히 입방정을 떨것소. 걱정허지를 말랑께요. 아그들아, 너들도 잘 알아묵겄지?"

 봉산동 사철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바다를 지키는 병사였다. 노인들과 아이들이 구봉산 기싥 서당산에서 사철을 채취하여 날랐다. 사철을 가득 넣은 십여 개의 용광로에 사철 취련장들의 풀무질이 계속되자 불순물이 말끔히 제거되었다. 녹여진 쇳물을 받아 굳힌 후 장정들의 근육질만큼 가속도가 붙은 망치질은 창이 되고 활촉이 되어 쌓였다. 일대의 노인네와 아이들은 사철을 옮기느라 하루 해가 짧았고, 건장한 대장장이들이 이를 악물고 두들기는 활기찬 쇠망치 소리는 밤이 깉어도 그칠 줄을 몰랐다.

봉산동 사람들이 피땀으로 달구어 낸 철갑으로 씌어진 거북선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왜장은 없었다. 아울러 거북선을 당해낼 왜선도 단 한 척이 없었다.

모두가 사철소의 풀무간에서 비지땀으로 만들어낸 강도 높은 애국충정 때문이었다.

 

소나무의 참전

 

소나무는 백 년을 기른 것이 아니면 동량이 될 수 없다. 여수의 금오도와 고돌산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송산으로 관리되던 곳이다. 금오도에서 베어낸 소나무를 묶어 뗏목을 만든 후 물때를 잘 맞춰 바다에 띄어 놓으면 소나무는 저절로 파도에 밀려와 좌수영성 앞바다에 닿았다.

 소나무는 재질이 강하고 뒤틀림이 적다. 그래서 어부들은 소나무로 배를 만들어 생계를 꾸렸다. 배 밑창에 목재를 댈 때는 송진을 발랐고, 목재를 포개서 붙일 때는 나무못을 박았다. 이순신은 좌수영의 소나무와 철과 주선술이면 충분히 거북선을 제작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순신이 나대용을 부르다

 


f28e631c4d28ee95847f40758ec6ac1b_1471312

 

이순신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할 나대용을 불렀다. 나대용은 조선 최고의 선박 기술자이면서 자신의 휘하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운 핵심 군관이었다.

 이순신과 나대용은 우리 배가 몸싸움을 이길 수 있는 육탄전 배이어야 승산이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였다.

일본배는 유선형이라서 물의 저항을 적게 받아 빠르게 속력을 낼 수 있으나 약하고 가벼운게 약점이었다. 그래서 적 진영의 한가운데로 치고 들어가야 하는 조선의 배는 부딪혀도 깨지지 않을 견고함과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모양새를 지녀야 했다. 그런 모양새로는 거북형상이 제격이었다. 필요하면 머리와 다리를 쑥 집어넣어 등껍질밖에 볼 수 없는 그런 거북의 형태를 응용하면 되었다. 겉표면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얇은 철판을 입혀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위에 다시 뾰족뾰족한 송곳으로 단단히 고정시키면 적이 올라올 수 없는 튼튼한 방어선을 구출할 수 있다. 거북선은 이순신에 의해 해전에 걸맞은 맞춤형 배로 구상되었다. 좌충우돌하며 적의 전함과 맞부딪혀 침몰시키는 저돌적인 전술을 사용할 수 잇는 최고의 배였던것이다. 아울러 전투 요원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거북선의 구조를 요구했다. 또 조수간만의 차이와 조류가 심한 조선의 지리적 여건을 잘 살펴 선체의 깊이가 얕은 평저형 저판 등을 빠짐없이 주문했다. 나대용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배를 만들어갔다.

 

거북선, 화포를 삼키다

 

거북선의 화포는 파괴력이 크고 사정거리가 긴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등으로 무장했다. 천자포는 직경 11.7cm의 둥근 철환을 발사하는 대포였는데 사정거리가 1,300보로 500m가 넘는 장거리용이었다. 지자포는 천자포보다 약간 작은 포탄이나 사정거리는 350m가 넘었다. 이러한 화력을 더욱 개발한 것도 좌수영 사람들이다. 북봉연대를 쌓은 이봉수는 당시 조선 최고의 화약 제조 기술자였다. 주선이 7년 전쟁에서 승리한 요인 중 하나가 뛰어난 화포기술이었다. 그러나 수도 한양이 20여 일만에 점령당하자 지방은 조정으로부터 화약을 보급 받을 수 없었다. 급기야 전라좌수군은 자체적으로 화약을 만들어 썼다. 다른 진영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전라좌수영은 이를 해냈다. 바로 이봉수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또 정사준은 광양 전탄에서 복병장으로 활약한 인물로 새로운 화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른 진영에서는 제조할 수 없었던 화약을 전라좌수군은 보유할 수 있었고, 한 발로 적선을 침몰시킬 수 있는 화포를 거북선에 장착할 수 있었다. 이로써 거북선은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완벽한 전함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f28e631c4d28ee95847f40758ec6ac1b_1471312 

 

 

 

 

 f28e631c4d28ee95847f40758ec6ac1b_1471312 

 전쟁 하루 전 거북선 출산

조선수군의 주력인 판옥선과 거북선을 비롯한 군선들은 선소에서 만들어졌다. 여수에는 좌수영 선소(중앙동), 방답진 선소(돌산 군내리), 순천 부선소(시전동)등 3개의 선소가 있었다. 선소에는 무기와 탄약이 보관되어 있었고, 선박을 만들거나 수리하기 위한 송판과 각종 도구 등을 보관 할 수 있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하지만 선소는 군선이 정박하는 기항지로서의 역할이 가장 컸다. 선창, 굴강 등이 만들어지고 관리되었던 것도 수군선박의 입출항을 자유롭게 하고 외부로부터 군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764fbf6ec53f83d161d9be422b4778e4_1471347 

 

 

이순신이 전라 좌수영에 부임하여 제작을 시작한 거북선은 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완성되었다. 거북선은 제작된 선소의 이름을 따서 본영 귀선, 방답 귀선, 순천 귀선 등으로 불리었다.​

 

출처 : 여수시 숨겨진 이야기속의 미항 여수 나들이​

 

 

 

 

 


 

[이 게시물은 여수여행센터1님에 의해 2018-03-09 11:19:08 포토노하우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