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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과정에서 한미 정상 간 '핵추진 잠수함(SSN)' 도입 승인에 관한 합의가 이뤄졌다. 잠수함 건조 능력과 원자력 기술을 동시에 갖춘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장기간 잠항과 고속 기동, 낮은 소음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전략자산이다. 억지력과 정보·정찰·감시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동맹의 연합작전 능력을 질적으로 도약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환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우리가 사용할 언어와 행동이다. 무엇을 합의했고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알현금수령자대출
고 있어야 한다. 몇 가지 체크 포인트가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11월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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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 합의' 환영할 일…세부 사항 챙겨야
첫째, 한미 정상 간 합의 내용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합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잠수함용 핵연료 접근을 중점 과제로 제시했고, 미국은 자국 내 건조 또는 광범위한 미국 내 조달을 시사했다. 두 나라증권투자추천
의 메시지는 모두 현실적인 선택지이지만, 정책적 함의는 완전히 다르다. 잠수함용 연료는 군수·비확산·보안 통제를 관통하는 핵심 변수이며 건조 위치와 역할 분담은 기술 축적, 산업 생태계, 유지·보수 체계, 국내 일자리와 직결된다. 한국 SSN에 대한 "트럼프의 승인"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국민과 산업계가 조준할 좌표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어느 황금성게임종류
범위까지 합의했고 어떤 전제 위에서 후속 협상을 진행하는지, 일정과 단계, 책임 소재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모호함은 불필요한 오해와 정치적 소음을 낳는다. 결국 사업 속도를 늦춘다. 출발도 못 할 수 있다.
둘째, 한미 원자력협정(일명 '123 협정')과 핵추진 잠수함 문제를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 123 협정은 원자력의 평테마주추천
화적 이용에 국한된 제도적 틀이다. 잠수함 추진용 원자로의 연료는 핵무기와 다른 것이지만 분명히 군사적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자력협정 개정 여부와 SSN 연료 조달 문제를 직결시키는 순간 해답은 멀어진다. 해답은 민수와 군수를 분리하는 것이다. 잠수함 추진 연료는 군사·동맹 채널에서 별도로 보안과 통제를 설계하고, 민수 분야의 농축·재활용은 전력 믹스와 사용후 핵연료 처분 정책, 산업 경쟁력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논리 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두 분야가 섞이면 설득이 무너지고, 설득이 무너지면 사회적 합의도 와해된다. 또한 외국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도대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한국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만든다.
셋째, 우리에게 원자력 원료인 우라늄 농축과 재활용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은 전력 정책과 직결된다. 농축 역량과 재활용(재처리 또는 고준위 폐기물 저감 기술)은 '원전을 많이 쓰고 앞으로 더 많이 쓸 나라'에서 현실적 과제가 된다. 이재명 정부 들어 심해진 신규 원전 억제, 계속운전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이어진다면 "왜 지금 농축과 재활용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길이 없다. 말과 행동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남는 해석은 발전 외의 다른 목적이라는 의심뿐이고, 이는 국내외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가 된다. 반대로 우리가 주요 원자력 이용국과 선언한 바와 같이 원자력발전을 2050년까지 약 3배로 확대하겠다는 명확한 방향이 제시되면, 농축은 연료 자립과 공급망 리스크 완화를 위한 산업·안보 정책으로, 재활용은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 부담을 대폭 줄이고(최종 처분량을 10분의 1 이하로 축소) 처분장 수명을 늘리는 환경·사회적 해법으로 자리 잡는다.
메시지는 간명해야 한다. '우리는 전력안보·탈탄소·산업 경쟁력을 위해 원전을 대폭 확대한다. 그래서 농축과 재활용이 필요하다' 정도라면 우리가 일본과 동등한 수준의 원자력 협력협정을 통해 무조건적인 농축과 재활용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객관적인 설득력을 가진다. 일본보다 인구도 적고, 경제 규모도 작지만 원자력발전은 더 많이 이용하는 나라가, 그것도 군사 동맹국이 일본에도 허용된 농축과 재활용을 못 한다면 말이 안 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전 인재 없는 핵잠수함은 '종이호랑이'
넷째, 정부의 표준 메시지를 간결하고 일관되게 세팅할 때다. 첫 문장은 이렇다. '핵추진 잠수함은 한국이 우리 기술로 건조한다. 연료는 미국이 공급해 달라.' 둘째 문장은 이렇게 잇자. '원자력발전은 2050년까지 설비 용량을 3배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농축 역량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고, 재활용을 통해 처분 효율을 높이며, 처분장 전략을 고도화한다.' 이 두 문장은 군수와 민수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도 한국과 미국의 정부, 국민, 산업계가 같은 그림을 보게 만드는 최대 공약수다. 무엇보다 '한국 내 건조+미국의 연료 공급'은 핵심 기술과 산업 기반을 국내에 축적하면서도 핵비확산(核非擴散)과 동맹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다.
다섯째, 인재 없는 전략은 '종이호랑이'다. 잠수함이나 원전은 사람 없이 설계도, 제작도, 운영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수년간의 혼선으로 원자력공학 전공 기피를 낳았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전력을 대규모로 요구하고, 탈탄소 숙제가 누적되는 상황에 모든 국가가 원자력을 하고 싶어도 잘 안돼 아우성인 상황이다. 우리만 원자력 기술을 깔고 앉아 바람, 햇빛 타령만 하고 있다. 어떤 산업도 숙련이 사라지면 한 세대 안에 쇠퇴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기 물량 신호와 '커리어 사다리'다. 정부는 2050년까지의 신규·계속 운전·개보수 계획을 수치로 제시하고, 학부-대학원-연구소-기업을 잇는 트랙을 넓혀야 한다. 국책 연구개발(R&D)과 실증 프로젝트를 결합한 현장형 인력 양성, 장학과 병역특례, 지역 캠퍼스-제조 클러스터 연계로 '배우고, 만들고, 운전하는' 전 주기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정책 메시지가 일관되면 젊은 인재는 돌아온다. 정부가 모든 투자를 관리할 때는 지났다. 민간에 과감하게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민간기업이 끌어올 수 있는 재원이 정부의 지원보다 훨씬 큰 세상이 됐다.
끝으로 이 사업은 동맹의 신뢰, 해양 전략, 에너지 미래를 한 번에 시험하는 프로젝트다. 환영과 경계, 속도와 숙고가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은 우리가 만들고, 연료는 동맹이 공급한다. 원전은 2050년까지 3배로 확대한다. 그래서 농축과 재활용, 처분 전략을 함께 추진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최고의 인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짧지만 분명한 이 문장이 국가의 약속이 될 때, 합의는 실력이 되고 실력은 안전과 번영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료한 언어, 일관된 신호, 그리고 실행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