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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여행과 나날’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저에겐 별로 재능이 없구나 느꼈습니다.”
미야케 쇼의 영화 ‘여행과 나날’은 주인공인 각본가 ‘이’(심은경)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털어놓듯 툭 던지는 자기 고백이다. 영화 속 시적 풍경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배우 심은경의 이 대사에서 마음이 덜컹 움직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답지 않은 빼어난 연기를 선보여 온, 긴 시간을 걸쳐 몇 번의 인터뷰를 나눠 온, 자기만의 필모그래피와 탄탄한 커리어를 지닌, 연기 경력 23년 바다이야기온라인 차에 달하는 배우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배우 심은경이 나와 두 번째로 만난 인터뷰에서 꺼낸 말이었다. 처음엔 그가 지나치게 겸손하다고, 기준이 너무 높다며, 인터뷰어들 특유의 뻔한 상찬과 능청으로 피해 갈 수 있는 무게의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어릴 때부터 릴게임5만 23년간 일을 해오면서 배우라는 업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었어요. ‘자신이 없는데, 이걸 해야 날 바라봐줘. 연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뭘 할 수 있어?’”
그 무게만큼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에게 연기란 어떤 것이냐고.
“비유하자면 애증을 품은 연인 사이 같은 거죠. 힘들어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건 결국 사랑하니까 그런 야마토게임다운로드 거겠죠. 너무 사랑하고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너무 사랑해서, 정말 잘하고 싶어서,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어서 저런 방식으로 말을 하는구나.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한국에서 고점에 있을 때 일본에 대담히 진출하고, 한일 양국을 오가며 성취를 거둔 심은경은 영화계의 특별한 존재다. 어떤 힘으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온 것인지 묻자, 황금성오락실 심은경은 다시 한번 뜻밖의 답을 했다.
“두려워서요. 한계에 마주칠까 두렵고, 그런 자신에게 매몰될까 두려워서.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고 보면 결국 또 해나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살아있는 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계속 움직이면서 나아가야 해요.”
요즘 유행어로는 ‘존재통’이라고 한다. 태어났고, 존재하기에 불가항력으 무료릴게임 로 따르는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그간 내가 지켜봐 온 심은경은 내면에 이는 존재통을 거스르는 힘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별다른 턱을 넘지 않고도 남들과 같은 방식을 체득해 정해진 길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심은경은 자기부정 속에서도 문득 비춘 희망이나 자신 안에서 피어오르는 낙관같은 것을 붙들면서, 끝없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스스로 원하는 답을 찾고 가고자 하는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였다.
이처럼 혹독히 싸우고 또 열렬히 사랑하는 일을 하는 자는 내가 알기로는 예술가 혹은 구도자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보기에 심은경은 차라리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가 말하는 ‘진심’이란 말은 그 단어에 덧입혀진 진부한 상투성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여서, 나는 그의 마음이 어떤 전형적인 표현에도 가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가와비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 옆에 자리한 야마가타현에서 겨우내 ‘여행과 나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심은경을 다시 만났다. 그는 전보다 훨씬 산뜻해진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배우에겐 한 번쯤 자서전을 쓰듯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때가 찾아오거든요. 이 영화가 제게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각본가 ‘이’(심은경)가 슬럼프에 부딪혀 설국으로 떠나는 ‘여행과 나날’은 다분히 메타적인 영화다. 영화 속에선 ‘이’가 쓴 극중극이 펼쳐지고, 이야기가 써지지 않아 떠난 곳에선 여관 주인이 그곳을 배경으로 이야기로 써줄 것을 청하기도, 이내 거절하기도 하며, 이야기로부터 도망쳐 이야기를 맞닥뜨리는 여정이 결국 한 편의 영화가 된다. 단잠에 빠져 긴 꿈을 꾸고, 찬물에 세수하며 그 모든 꿈을 잊어버렸다는 ‘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눈밭을 걷는 뒷모습으로 마치는 이야기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온 각본가 ‘이’는 배우 심은경과 닮았다. 타지에서 일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말수가 적고 신중한 태도, 한 발짝 거리를 두는 내향적인 성정이나 곰곰이 생각하고 머뭇거리는 제스처, 은근한 템포의 유머마저도 그렇다. 미야케 쇼 감독이 원작 만화에서는 일본의 중년 남자였던 역할을 심은경에게 줄 때부터 어쩌면 ‘이’는 심은경과 똑 닮을 운명이었으리라. 촬영 후 감독의 제안으로 내레이션을 넣게 된 심은경은 감독이 준 대본을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 자신의 말로 만들었다.
“살다 보면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일이 있다. (...) 그러나 늘 어김없이, 말에 붙들리고 만다. (...) 나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려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의 내레이션처럼 말은 곧 규정이다. 아직 언어화하지 못한 낯선 감정과 압도적 광경도 논리와 판단과 규정을 거치면 손에 잡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가 포착하기 전 우리 앞에 먼저 거세게 도착해 있는 풍경과 정동을 담아내는 것이 영화라는 것을 ‘여행과 나날’은 알고 있다.
‘이’ 역시 그를 알기에, 정해진 것에서 벗어나고자 고향을 떠나 타지에 왔고, 타지에서 다시 그 규범에 포박되자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왔으리라. 나는 배우 심은경 역시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이’의 생각에 감응하듯, ‘여행과 나날’은 대사가 적은 영화다. 4:3이라는 고전적인 화면비로 근경보다는 원경을 담고, 감정보다는 공기를 담는다. 이가 ‘말’을 피해 떠난 겨울은 적막하다. 소음은 잦아들고 보이는 것은 온통 눈 뿐. 어둠 속 하염없이 내리는 폭설과 희디흰 적막 속 피어오르는 입김, 데워진 국과 화로에서 솟아나는 김에서는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여백에는 시냇물 같은 잔잔한 유머가 흐른다. 무뚝뚝한 중년의 여관 주인도 한밤중의 소동도 화로구이 신세가 된 비단잉어도, 작은 사건이지만 ‘이’에겐 슬럼프를 통과하여 바로 앉아 펜을 들 힘이 된다.
영화 시사를 마치고 배우 심은경에게 “자서전 같은 영화라더니, 정말 그렇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선선히 웃으며 “보는 관객들 누구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는 ‘이’가 되어 깊은 설국을 다녀왔다. 여관 주인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설핏 잠도 들었고, 한밤중 눈 쌓인 고개를 엉금엉금 넘었고, 꽝꽝 언 비단잉어를 보고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다. 광막한 풍경 속에 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러자 겨우내 얹힌 듯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산뜻해졌다.
슬럼프를 겪는 것은 예술가의 일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하던 일이 관성적으로 느껴질 때가 찾아온다.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말들에 구속당하고, 또 판단되는 것이 지긋지긋해져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 또한 만인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이’는 나를 닮았다. 아마 당신도, 또 다른 당신도 닮았을 것이다.
나는 ‘이’가 맨손으로 움켜쥔 흰 눈의 감촉이나 김 오르는 쌀밥 한술의 포만감, 안경에 서린 김의 미지근한 습기를 떠올리며, 두텁게 쌓인 눈밭에 발이 푹푹 빠지며 멀어져 가는 ‘이’처럼 극장을 나섰다. 여행은 영화를 닮았고 영화는 인생을 닮았다. 배우 심은경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에 온통 쏟는 마음을, 정해진 규범에 갇히지 않으려는 ‘마이웨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힘을 질투하며, 조금은 가볍고 편안해 보였던 맑은 얼굴을 떠올리며. 극장 밖 어쩐지 조금 낯설고 생생해진 세상을 마주 섰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주인이 되는 힘’을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27453.html?h=s
▶AI는 만들 수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05809.html?h=s
▶이슬아 작가의 ‘이메일 쓰는 법’을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03367.html?h=s
▶“자연으로 돌아가겠다” 임윤찬의 ‘구도자’적 태도를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88955.html?h=s
이예지 에디터
*영화 ‘여행과 나날’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저에겐 별로 재능이 없구나 느꼈습니다.”
미야케 쇼의 영화 ‘여행과 나날’은 주인공인 각본가 ‘이’(심은경)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털어놓듯 툭 던지는 자기 고백이다. 영화 속 시적 풍경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배우 심은경의 이 대사에서 마음이 덜컹 움직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답지 않은 빼어난 연기를 선보여 온, 긴 시간을 걸쳐 몇 번의 인터뷰를 나눠 온, 자기만의 필모그래피와 탄탄한 커리어를 지닌, 연기 경력 23년 바다이야기온라인 차에 달하는 배우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배우 심은경이 나와 두 번째로 만난 인터뷰에서 꺼낸 말이었다. 처음엔 그가 지나치게 겸손하다고, 기준이 너무 높다며, 인터뷰어들 특유의 뻔한 상찬과 능청으로 피해 갈 수 있는 무게의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어릴 때부터 릴게임5만 23년간 일을 해오면서 배우라는 업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었어요. ‘자신이 없는데, 이걸 해야 날 바라봐줘. 연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뭘 할 수 있어?’”
그 무게만큼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에게 연기란 어떤 것이냐고.
“비유하자면 애증을 품은 연인 사이 같은 거죠. 힘들어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건 결국 사랑하니까 그런 야마토게임다운로드 거겠죠. 너무 사랑하고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너무 사랑해서, 정말 잘하고 싶어서,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어서 저런 방식으로 말을 하는구나.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한국에서 고점에 있을 때 일본에 대담히 진출하고, 한일 양국을 오가며 성취를 거둔 심은경은 영화계의 특별한 존재다. 어떤 힘으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온 것인지 묻자, 황금성오락실 심은경은 다시 한번 뜻밖의 답을 했다.
“두려워서요. 한계에 마주칠까 두렵고, 그런 자신에게 매몰될까 두려워서.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고 보면 결국 또 해나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살아있는 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계속 움직이면서 나아가야 해요.”
요즘 유행어로는 ‘존재통’이라고 한다. 태어났고, 존재하기에 불가항력으 무료릴게임 로 따르는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그간 내가 지켜봐 온 심은경은 내면에 이는 존재통을 거스르는 힘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별다른 턱을 넘지 않고도 남들과 같은 방식을 체득해 정해진 길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심은경은 자기부정 속에서도 문득 비춘 희망이나 자신 안에서 피어오르는 낙관같은 것을 붙들면서, 끝없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스스로 원하는 답을 찾고 가고자 하는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였다.
이처럼 혹독히 싸우고 또 열렬히 사랑하는 일을 하는 자는 내가 알기로는 예술가 혹은 구도자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보기에 심은경은 차라리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가 말하는 ‘진심’이란 말은 그 단어에 덧입혀진 진부한 상투성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여서, 나는 그의 마음이 어떤 전형적인 표현에도 가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가와비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 옆에 자리한 야마가타현에서 겨우내 ‘여행과 나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심은경을 다시 만났다. 그는 전보다 훨씬 산뜻해진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배우에겐 한 번쯤 자서전을 쓰듯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때가 찾아오거든요. 이 영화가 제게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각본가 ‘이’(심은경)가 슬럼프에 부딪혀 설국으로 떠나는 ‘여행과 나날’은 다분히 메타적인 영화다. 영화 속에선 ‘이’가 쓴 극중극이 펼쳐지고, 이야기가 써지지 않아 떠난 곳에선 여관 주인이 그곳을 배경으로 이야기로 써줄 것을 청하기도, 이내 거절하기도 하며, 이야기로부터 도망쳐 이야기를 맞닥뜨리는 여정이 결국 한 편의 영화가 된다. 단잠에 빠져 긴 꿈을 꾸고, 찬물에 세수하며 그 모든 꿈을 잊어버렸다는 ‘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눈밭을 걷는 뒷모습으로 마치는 이야기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온 각본가 ‘이’는 배우 심은경과 닮았다. 타지에서 일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말수가 적고 신중한 태도, 한 발짝 거리를 두는 내향적인 성정이나 곰곰이 생각하고 머뭇거리는 제스처, 은근한 템포의 유머마저도 그렇다. 미야케 쇼 감독이 원작 만화에서는 일본의 중년 남자였던 역할을 심은경에게 줄 때부터 어쩌면 ‘이’는 심은경과 똑 닮을 운명이었으리라. 촬영 후 감독의 제안으로 내레이션을 넣게 된 심은경은 감독이 준 대본을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 자신의 말로 만들었다.
“살다 보면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일이 있다. (...) 그러나 늘 어김없이, 말에 붙들리고 만다. (...) 나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려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의 내레이션처럼 말은 곧 규정이다. 아직 언어화하지 못한 낯선 감정과 압도적 광경도 논리와 판단과 규정을 거치면 손에 잡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가 포착하기 전 우리 앞에 먼저 거세게 도착해 있는 풍경과 정동을 담아내는 것이 영화라는 것을 ‘여행과 나날’은 알고 있다.
‘이’ 역시 그를 알기에, 정해진 것에서 벗어나고자 고향을 떠나 타지에 왔고, 타지에서 다시 그 규범에 포박되자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왔으리라. 나는 배우 심은경 역시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이’의 생각에 감응하듯, ‘여행과 나날’은 대사가 적은 영화다. 4:3이라는 고전적인 화면비로 근경보다는 원경을 담고, 감정보다는 공기를 담는다. 이가 ‘말’을 피해 떠난 겨울은 적막하다. 소음은 잦아들고 보이는 것은 온통 눈 뿐. 어둠 속 하염없이 내리는 폭설과 희디흰 적막 속 피어오르는 입김, 데워진 국과 화로에서 솟아나는 김에서는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여백에는 시냇물 같은 잔잔한 유머가 흐른다. 무뚝뚝한 중년의 여관 주인도 한밤중의 소동도 화로구이 신세가 된 비단잉어도, 작은 사건이지만 ‘이’에겐 슬럼프를 통과하여 바로 앉아 펜을 들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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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가 되어 깊은 설국을 다녀왔다. 여관 주인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설핏 잠도 들었고, 한밤중 눈 쌓인 고개를 엉금엉금 넘었고, 꽝꽝 언 비단잉어를 보고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다. 광막한 풍경 속에 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러자 겨우내 얹힌 듯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산뜻해졌다.
슬럼프를 겪는 것은 예술가의 일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하던 일이 관성적으로 느껴질 때가 찾아온다.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말들에 구속당하고, 또 판단되는 것이 지긋지긋해져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 또한 만인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이’는 나를 닮았다. 아마 당신도, 또 다른 당신도 닮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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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주인이 되는 힘’을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27453.html?h=s
▶AI는 만들 수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05809.html?h=s
▶이슬아 작가의 ‘이메일 쓰는 법’을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03367.html?h=s
▶“자연으로 돌아가겠다” 임윤찬의 ‘구도자’적 태도를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88955.html?h=s
이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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