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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 <기자말>
[안치용 영화평론가]
최근 영국 정부는 기후위기로 큰 피해를 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 지원 재원을 20% 이상 줄일 계획을 세웠다. 지난 5년 116억 파운드(23조 1074억 원)였던 지원 규모를 향후 5년 내 90억 파운드(17조 9282억 원)로 축소 바다이야기디시 하겠다는 방침이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제 구매력 기준으로는 약 40% 감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조치는 불과 1년 전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글로벌 기후 재원을 연간 3000억 달러(436조 8300억 원)로 세 배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아프리카 기후 싱크탱크의 모하메드 아도우 소장은 <가디언>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인터뷰에서 "생명과 생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교육이나 보건 등 기존 개발협력 사업을 기후 재원으로 재분류하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기후 재원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1]
영국의 사례는 남반구에 대한 기후식민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등 구조가 글로벌 남북 간에 황금성오락실 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북반구 내부에서도 기후식민주의는 소수자를 향한 억압으로 나타난다. 기후식민주의가 더 이상 남북 국가 간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추진된 사이트C 수력발전소.
ⓒ 사이트C
인권과 기후 정책의 모범국으로 불리는 캐 바다이야기꽁머니 나다에서도 녹색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토착민이 식민화를 경험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사이트C 수력발전소는 청정에너지와 탄소 감축을 내세워 추진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토착 공동체의 성지와 사냥터를 앗아갔다. 탄소 감축이라는 명분이 토착민의 주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내부 식민화의 도구로 쓰인 사례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추진된 사이트C 수력발전소는 청정에너지 확대와 탄소 감축을 내세운 대표적인 기후 대응 프로젝트다. 2015년 7월 착공해 지난해 8월 완공한 발전소 사업은 '조약 8' 지역의 '아사바스카와 크리' 공동체로 하여금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그들의 성지와 사냥터, 어로 구역을 잃게 만들었다.
1899년에 체결된 '조약 8'은 토착민의 문화 활동과 사냥, 낚시 권리를 보호하기로 한 영국 왕실과 공존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수십 년 이어진 법적 소송과 시위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 연방헌법이 보장한 "자유롭고 사전적인 그리고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 원칙을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탄소 감축 명분이 어떻게 토착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북유럽 사프미 지역의 녹색 전환과 원주민 권리
▲ 순록과 함께하는 사미족
ⓒ 국제앰네스티
사프미(Sápmi)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북부와 러시아 콜라반도에 걸쳐 있는 사미(Sámi) 원주민의 전통적 삶의 터전을 가리키는 지리·문화적 개념이다. 사미족은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유일한 원주민 집단으로 순록 방목·어로·수렵·채집과 같은 자연 기반 생계 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했다. 사프미는 특정 국가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토지 이용 방식과 공동체 관계, 문화적 실천이 결합된 생활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2]
최근 이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자원 개발이 가속되면서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 논쟁이 뜨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르웨이 포센(Fosen) 지역 풍력발전 단지다. 151기의 풍력 터빈이 설치된 유럽의 대규모 육상 풍력발전 단지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의 풍력발전 개발은 약 20여 년 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로, 당시 유럽 녹색 전환의 상징으로 추진되었다.
착공한 2016년 사업주체와 사미 공동체 사이의 법적·사회적 갈등이 시작됐고, 2021년 노르웨이 대법원은 이 사업이 사미 순록 방목 공동체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미 151기의 터빈이 설치되어 가동 중인 상태였고 그 이후로 발전소 운영이 계속되면서 녹색 식민주의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연구에 따르면 노르웨이 풍력발전의 약 절반이 순록 방목 지역에서 건설됐으며, 풍력 터빈의 시각적·소음 영향으로 순록이 그 지역을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 방목지 이용 감소와 노동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지금도 사미 공동체와 노르웨이 정부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노르웨이 사미 공동체는 총리에게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멈춰, 사미족의 삶을 지켜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3] [4]
노르웨이 사프미 지역의 오이피엘레(Oyfjellet) 풍력발전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갈등을 낳았다. 이 같은 갈등은 노르웨이뿐 아니라 스웨덴·핀란드·러시아 등 사프미 전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유럽의 녹색 전환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이 원주민 토지와 자원을 새로운 개발 대상지로 만들면서, 사미 공동체는 "녹색 식민주의"라고 강력하게 반반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 환경 보호라는 목표뿐 아니라 원주민 권리와 사회적 정의를 함께 고려해야 함을 보여주는 유럽의 사례다.
시민과 지역이 만든 정의로운 전환
북반구와 남반구를 아우르는 기후식민 상황을 개선할 대안이 있을까. 힘들지만 없지는 않다. 가뭄과 토양 황폐화로 고통받던 케냐 바링고 지역에서는 액션에이드와 여성 농민조합이 협력해 농생태학 기반 전환을 시도했다. 그들은 지역 종자 보존, 혼작, 퇴비 기반 유기비료 사용을 통해 토양과 식량 자립을 회복했다. 생산성이 향상되었고, 여성의 경제적 지위와 의사결정권이 강해졌다.
필리핀 네그로스 섬은 시민주도 정의로운 전환의 상징이다. 2017년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에 맞서 시민단체, 청년, 종교계, 지방정부가 연대했다. 이들은 지역 주민 토론, 청년 캠페인 등을 통해 결국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태양광·소수력 중심 재생에너지 계획으로 전환했다. 전환 주체가 시민이라는 사실은 민주적 기후정의의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짐바브웨 불라와요에서는 청년들이 직접 마을에 소형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하며 에너지 자립을 실현했다. 이 프로젝트는 "외부 기술 이전이 아니라, 내부 역량 강화에 기반한 전환"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문제 해결의 중심에 지역을 두었다"는 점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통제하고 누가 혜택을 받느냐의 문제다.[6]
▲ 캐나다의 원주민기후행동, 북미의 랜드백 캠페인.
ⓒ 원주민기후행동
토착민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수천 년 생태계를 관리하고 인류학자들이 지속가능성의 원형이라 부르는 순환적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의 지식은 비과학적, 비체계적이라는 이유로 주변화하고 배척된다.
토착 공동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지식의 주권'을 주장하며 스스로 기후행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캐나다의 원주민기후행동(Indigenous Climate Action), 북미의 랜드백(LandBack) 캠페인 등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토지를 되찾는 것이 곧 기후를 되찾는 일"임을 선언한다.[7]
기후식민주의 본질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대가를 치르느냐의 문제다. 국제기구 회의장은 여전히 금융 전문가와 기술관료가 주도하며 토착 언어와 지역 지식은 배제된다. 불평등한 구조는 식민지 시대의 국제무역과 다르지 않다. 인류는 이제 "누가 기후를 말할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윤리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개념이 바로 '탈식민적 기후정의'다. 단순히 기후정책의 공정한 분배를 넘어 기후 거버넌스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요구다.
토착민 연구자 데보라 맥그리거는 "기후정의는 정책이 아니라 관계성의 문제다. 인간과 비인간, 땅과 공동체가 맺는 관계의 회복 없이는 어떤 기술도 정의를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한다. 탈식민적 기후정의는 따라서 기후를 다스리는 권력 자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기후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다시 배우는 것이다.[8]
기후금융의 구조 개혁: '위로부터의 구원'에서 '아래로부터의 정의'로
'탈식민적 정의'의 첫걸음은 기후금융의 구조 개혁이다. 현재의 국제 기후재정은 북반구 금융기관이 자본을 제공하고 남반구는 그 자본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구조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사라지고 이른 바 '하청된 정의'만이 작동한다.
액션에이드는 '기후재정의 탈중앙화'를 통해 재정의 결정권과 설계권을 남반구와 지역공동체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얼마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쓸 것인가'의 문제다. 핵심은 ▲ 지역 단체 직접 관리 ▲ 지역 주민의 결정권 ▲ 사회·노동·젠더 지표 통합 등의 원칙의 구현이다.[9]
더 나아가 정의로운 전환은 지역이 주체가 되는 기후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기후위기 해법이 자본과 기술의 언어로만 논의되는 한, 남반구와 토착민은 여전히 대상일 뿐이다. 진정한 전환은 소유가 아니라 통제와 참여의 재분배에서 시작된다. 또한 토착 지식의 복권이 필요하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위치한 북미 원주민의 해방과 탈식민주의를 주장하는 급진적인 풀뿌리 저항 단체 '레드네이션'은 토착 지식을 "지속가능성의 가장 오래된 학교"라 부른다. 탈식민적 기후정의의 핵심이 "정책 이전에 관계를 되돌리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즉, 땅과 물, 생명과 인간 사이의 상호 의존을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기후정의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10]
캐나다의 원주민기후행동(ICA)은 토착법과 공동체 의례를 기후정책의 법적·제도적 기반으로 통합하는 원주민 주도의 기후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단순한 문화적 상징을 넘어 기후정의 담론과 정책 구조 자체를 탈식민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토착 지식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때 기후정의는 비로소 지역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11][12]
국제 거버넌스의 재설계, 대리참여에서 공동결정으로
▲ 2025년 11월 20일 진행된 국제 토착민 기후변화 포럼(IIPFCC) 이른바 ‘토착민 COP’에서 토착민 리더들이 토착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가로막는 지속적인 과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ICA
현재의 국제기후체제(UNFCCC, COP 등)는 토착민 단체를 '참관인'으로 분류한다. 이들은 회의장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13] 식민적 권력구조의 재현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려면 토착민과 남반구 시민사회의 공동결정권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참여가 아니라 결정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탈식민 연구자들은 ①평등한 의사결정구조(토착 대표가 국제협약의 공식 교섭 당사자로 참여) ②언어적 다원주의(회의 언어와 문서를 주요 토착 언어로 번역) ③지역조약(글로벌 협약보다 강력한 지역 단위의 협력 조약 체결)의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이 원칙에 입각한 구조적 변화 없이는 기후정의는 선언으로만 남는다.[14]
탈식민적 기후정의는 단지 분배를 재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 자체를 전환하는 일이다. 즉, 인간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관계 중심의 생태적 윤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원주민기후행동(ICA)의 사무총장이자 아타바스카 치페와얀 원주민 부족 구성원인 에리엘 데랑거는 "진정한 기후 해결책은 땅으로의 회귀와 땅의 회귀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말한다. 기후정의는 숫자나 지표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철학이자 공동체의 윤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정책이 기술이 아닌 관계의 회복을 중심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이 있는 정의를 회복할 수 있다.[15]
기후위기의 시대, 진정한 정의로운 전환이란 '사람이 기술에 맞춰 사는 세상'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정의는 숫자가 아니라 얼굴을 가져야 한다. 그 얼굴은 방글라데시의 여성 농민이자 브라질의 토지 없는 노동자이며, 캐나다의 크리족 어부이자 아프리카의 젊은 태양광 기술자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세계 기후정책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사람이 있는 정의 그리고 식민의 언어를 넘어선 전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윤진 SDG경영연구소장,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덧붙이는 글
[안치용 영화평론가]
최근 영국 정부는 기후위기로 큰 피해를 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 지원 재원을 20% 이상 줄일 계획을 세웠다. 지난 5년 116억 파운드(23조 1074억 원)였던 지원 규모를 향후 5년 내 90억 파운드(17조 9282억 원)로 축소 바다이야기디시 하겠다는 방침이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제 구매력 기준으로는 약 40% 감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조치는 불과 1년 전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글로벌 기후 재원을 연간 3000억 달러(436조 8300억 원)로 세 배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아프리카 기후 싱크탱크의 모하메드 아도우 소장은 <가디언>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인터뷰에서 "생명과 생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교육이나 보건 등 기존 개발협력 사업을 기후 재원으로 재분류하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기후 재원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1]
영국의 사례는 남반구에 대한 기후식민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등 구조가 글로벌 남북 간에 황금성오락실 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북반구 내부에서도 기후식민주의는 소수자를 향한 억압으로 나타난다. 기후식민주의가 더 이상 남북 국가 간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추진된 사이트C 수력발전소.
ⓒ 사이트C
인권과 기후 정책의 모범국으로 불리는 캐 바다이야기꽁머니 나다에서도 녹색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토착민이 식민화를 경험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사이트C 수력발전소는 청정에너지와 탄소 감축을 내세워 추진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토착 공동체의 성지와 사냥터를 앗아갔다. 탄소 감축이라는 명분이 토착민의 주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내부 식민화의 도구로 쓰인 사례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추진된 사이트C 수력발전소는 청정에너지 확대와 탄소 감축을 내세운 대표적인 기후 대응 프로젝트다. 2015년 7월 착공해 지난해 8월 완공한 발전소 사업은 '조약 8' 지역의 '아사바스카와 크리' 공동체로 하여금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그들의 성지와 사냥터, 어로 구역을 잃게 만들었다.
1899년에 체결된 '조약 8'은 토착민의 문화 활동과 사냥, 낚시 권리를 보호하기로 한 영국 왕실과 공존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수십 년 이어진 법적 소송과 시위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 연방헌법이 보장한 "자유롭고 사전적인 그리고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 원칙을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탄소 감축 명분이 어떻게 토착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북유럽 사프미 지역의 녹색 전환과 원주민 권리
▲ 순록과 함께하는 사미족
ⓒ 국제앰네스티
사프미(Sápmi)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북부와 러시아 콜라반도에 걸쳐 있는 사미(Sámi) 원주민의 전통적 삶의 터전을 가리키는 지리·문화적 개념이다. 사미족은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유일한 원주민 집단으로 순록 방목·어로·수렵·채집과 같은 자연 기반 생계 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했다. 사프미는 특정 국가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토지 이용 방식과 공동체 관계, 문화적 실천이 결합된 생활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2]
최근 이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자원 개발이 가속되면서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 논쟁이 뜨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르웨이 포센(Fosen) 지역 풍력발전 단지다. 151기의 풍력 터빈이 설치된 유럽의 대규모 육상 풍력발전 단지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의 풍력발전 개발은 약 20여 년 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로, 당시 유럽 녹색 전환의 상징으로 추진되었다.
착공한 2016년 사업주체와 사미 공동체 사이의 법적·사회적 갈등이 시작됐고, 2021년 노르웨이 대법원은 이 사업이 사미 순록 방목 공동체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미 151기의 터빈이 설치되어 가동 중인 상태였고 그 이후로 발전소 운영이 계속되면서 녹색 식민주의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연구에 따르면 노르웨이 풍력발전의 약 절반이 순록 방목 지역에서 건설됐으며, 풍력 터빈의 시각적·소음 영향으로 순록이 그 지역을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 방목지 이용 감소와 노동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지금도 사미 공동체와 노르웨이 정부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노르웨이 사미 공동체는 총리에게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멈춰, 사미족의 삶을 지켜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3] [4]
노르웨이 사프미 지역의 오이피엘레(Oyfjellet) 풍력발전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갈등을 낳았다. 이 같은 갈등은 노르웨이뿐 아니라 스웨덴·핀란드·러시아 등 사프미 전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유럽의 녹색 전환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이 원주민 토지와 자원을 새로운 개발 대상지로 만들면서, 사미 공동체는 "녹색 식민주의"라고 강력하게 반반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 환경 보호라는 목표뿐 아니라 원주민 권리와 사회적 정의를 함께 고려해야 함을 보여주는 유럽의 사례다.
시민과 지역이 만든 정의로운 전환
북반구와 남반구를 아우르는 기후식민 상황을 개선할 대안이 있을까. 힘들지만 없지는 않다. 가뭄과 토양 황폐화로 고통받던 케냐 바링고 지역에서는 액션에이드와 여성 농민조합이 협력해 농생태학 기반 전환을 시도했다. 그들은 지역 종자 보존, 혼작, 퇴비 기반 유기비료 사용을 통해 토양과 식량 자립을 회복했다. 생산성이 향상되었고, 여성의 경제적 지위와 의사결정권이 강해졌다.
필리핀 네그로스 섬은 시민주도 정의로운 전환의 상징이다. 2017년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에 맞서 시민단체, 청년, 종교계, 지방정부가 연대했다. 이들은 지역 주민 토론, 청년 캠페인 등을 통해 결국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태양광·소수력 중심 재생에너지 계획으로 전환했다. 전환 주체가 시민이라는 사실은 민주적 기후정의의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짐바브웨 불라와요에서는 청년들이 직접 마을에 소형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하며 에너지 자립을 실현했다. 이 프로젝트는 "외부 기술 이전이 아니라, 내부 역량 강화에 기반한 전환"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문제 해결의 중심에 지역을 두었다"는 점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통제하고 누가 혜택을 받느냐의 문제다.[6]
▲ 캐나다의 원주민기후행동, 북미의 랜드백 캠페인.
ⓒ 원주민기후행동
토착민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수천 년 생태계를 관리하고 인류학자들이 지속가능성의 원형이라 부르는 순환적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의 지식은 비과학적, 비체계적이라는 이유로 주변화하고 배척된다.
토착 공동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지식의 주권'을 주장하며 스스로 기후행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캐나다의 원주민기후행동(Indigenous Climate Action), 북미의 랜드백(LandBack) 캠페인 등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토지를 되찾는 것이 곧 기후를 되찾는 일"임을 선언한다.[7]
기후식민주의 본질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대가를 치르느냐의 문제다. 국제기구 회의장은 여전히 금융 전문가와 기술관료가 주도하며 토착 언어와 지역 지식은 배제된다. 불평등한 구조는 식민지 시대의 국제무역과 다르지 않다. 인류는 이제 "누가 기후를 말할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윤리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개념이 바로 '탈식민적 기후정의'다. 단순히 기후정책의 공정한 분배를 넘어 기후 거버넌스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요구다.
토착민 연구자 데보라 맥그리거는 "기후정의는 정책이 아니라 관계성의 문제다. 인간과 비인간, 땅과 공동체가 맺는 관계의 회복 없이는 어떤 기술도 정의를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한다. 탈식민적 기후정의는 따라서 기후를 다스리는 권력 자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기후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다시 배우는 것이다.[8]
기후금융의 구조 개혁: '위로부터의 구원'에서 '아래로부터의 정의'로
'탈식민적 정의'의 첫걸음은 기후금융의 구조 개혁이다. 현재의 국제 기후재정은 북반구 금융기관이 자본을 제공하고 남반구는 그 자본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구조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사라지고 이른 바 '하청된 정의'만이 작동한다.
액션에이드는 '기후재정의 탈중앙화'를 통해 재정의 결정권과 설계권을 남반구와 지역공동체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얼마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쓸 것인가'의 문제다. 핵심은 ▲ 지역 단체 직접 관리 ▲ 지역 주민의 결정권 ▲ 사회·노동·젠더 지표 통합 등의 원칙의 구현이다.[9]
더 나아가 정의로운 전환은 지역이 주체가 되는 기후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기후위기 해법이 자본과 기술의 언어로만 논의되는 한, 남반구와 토착민은 여전히 대상일 뿐이다. 진정한 전환은 소유가 아니라 통제와 참여의 재분배에서 시작된다. 또한 토착 지식의 복권이 필요하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위치한 북미 원주민의 해방과 탈식민주의를 주장하는 급진적인 풀뿌리 저항 단체 '레드네이션'은 토착 지식을 "지속가능성의 가장 오래된 학교"라 부른다. 탈식민적 기후정의의 핵심이 "정책 이전에 관계를 되돌리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즉, 땅과 물, 생명과 인간 사이의 상호 의존을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기후정의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10]
캐나다의 원주민기후행동(ICA)은 토착법과 공동체 의례를 기후정책의 법적·제도적 기반으로 통합하는 원주민 주도의 기후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단순한 문화적 상징을 넘어 기후정의 담론과 정책 구조 자체를 탈식민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토착 지식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때 기후정의는 비로소 지역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11][12]
국제 거버넌스의 재설계, 대리참여에서 공동결정으로
▲ 2025년 11월 20일 진행된 국제 토착민 기후변화 포럼(IIPFCC) 이른바 ‘토착민 COP’에서 토착민 리더들이 토착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가로막는 지속적인 과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ICA
현재의 국제기후체제(UNFCCC, COP 등)는 토착민 단체를 '참관인'으로 분류한다. 이들은 회의장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13] 식민적 권력구조의 재현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려면 토착민과 남반구 시민사회의 공동결정권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참여가 아니라 결정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탈식민 연구자들은 ①평등한 의사결정구조(토착 대표가 국제협약의 공식 교섭 당사자로 참여) ②언어적 다원주의(회의 언어와 문서를 주요 토착 언어로 번역) ③지역조약(글로벌 협약보다 강력한 지역 단위의 협력 조약 체결)의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이 원칙에 입각한 구조적 변화 없이는 기후정의는 선언으로만 남는다.[14]
탈식민적 기후정의는 단지 분배를 재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 자체를 전환하는 일이다. 즉, 인간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관계 중심의 생태적 윤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원주민기후행동(ICA)의 사무총장이자 아타바스카 치페와얀 원주민 부족 구성원인 에리엘 데랑거는 "진정한 기후 해결책은 땅으로의 회귀와 땅의 회귀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말한다. 기후정의는 숫자나 지표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철학이자 공동체의 윤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정책이 기술이 아닌 관계의 회복을 중심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이 있는 정의를 회복할 수 있다.[15]
기후위기의 시대, 진정한 정의로운 전환이란 '사람이 기술에 맞춰 사는 세상'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정의는 숫자가 아니라 얼굴을 가져야 한다. 그 얼굴은 방글라데시의 여성 농민이자 브라질의 토지 없는 노동자이며, 캐나다의 크리족 어부이자 아프리카의 젊은 태양광 기술자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세계 기후정책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사람이 있는 정의 그리고 식민의 언어를 넘어선 전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윤진 SDG경영연구소장,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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